일, 04/28/2024 -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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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 "틀린 예언" 보다 더 큰 상처를 남긴 "책임 전가"

한국어에 적반하장(賊反荷杖) 이라는 표현이 있지요. 그 표현이 자꾸 떠오르네요.

아래 글은 "자손만대"라는 닉네임을 사용하셨던 연세있는 카페 선배님이 남겨주신 글입니다. 본 글은 증인 조직이 1975년의 문제에 대해 이미 충분히 사과를 했다라고 주장하는 현역 증인님에게 자손만대님께서 대답하시는 글입니다. 글에서의 '님'은 그 증인님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출처)

cafe.daum.net/christianfreedom/JgxM/992

 

1975년 문제를 당시 책임자가 사과했다고 했는데 어떤 출판물에서 그처럼 사과를 했나요?연설로요? 아니면 출판물에서요? 님께 1975년을 라이브러리 검색을 권합니다. 대부분의 출판물에서 "일부 전도인들이" 또는 "일부 장로들이" 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마치 협회가 이 문제에 있어서 자신들이 벌인 일이 아닌 양 책임을 회피하는 무책임하고 남자답지 못한 비겁한 태도를 표명했습니다.

  

 시간되시면 1988년 연감 한국 편 맨 마지막 부분도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협회가 각 회중에 머라고 편지를 보냈는 살펴 보지요. 아래는 1988년 연감 한국편 190면 입니다.(밑줄친 부분에 유의해서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1976 봉사 년도가 시작되자 처음 몇달 동안 전도인 수와 가정 성서 연구 건수가 감소하였다. 이러한 감소 추세는3년 이상이나 계속되어 전도인 수가 26퍼센트나 감소되었(다)...... 지부 형제들은 당혹하였다. 추세는 역전될 것인가?물론, 그들이나 협회에서는 그러한 추세를 그대로 방관하지 않았다.

     

      1977년4월일자 협회편지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우리는 형제들이 가르칠 때 조심하기를 바랍니다. 아마 일부 전도인들은 1975년이라는 해를 지나치게 강조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좋은 기초가 놓여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 기초는 물론 그리스도 예수와 대속 희생에 대한 믿음이어야 하며, 헌신은 이해력을 가진 것이어야 합니다.”

참으로 솔직한 관찰이었다! 성서를 가르치는 일부 전도인들이 특정한 해를 지나치게 강조하였던 것이다. 새로 침례받은 많은 사람들은 감정의 물결에 따라 진리를 받아들였다. 일부 장로들까지도 그들의 희망을 1975년에 맞추었다."

 

 자... 어떻습니까? 이 출판물만 보면 마치 협회는 특정연대에 대해 아무런 주장을 하지 않았는데 일부 극성스런 전도인들이 협회 견해와는 무관하게 떠들고 다녀서 이렇게 되었다는 식이랍니다..이것은 전형적인 "오리발" 전략이지요...저는 개인적으로 1975년과 관련하여 여러 경험을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하였으며, 이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사람입니다...그러나 저의 개인적인 경험은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하지만 정작 저를 더욱 실망시킨것은 예언 불발보다도 그 이후 협회의 남자답지 못한 비겁한 태도였답니다....

 

조직에서는 1975년 이전 몇년 전부터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전세계 증인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고 갔지요...출판물들과 각종 대회 때 연설에서 1975년에 대한 강조는 단골 메뉴였다고 합니다... 1975년 종말론을 강조할수록 전세계의 전도인 수는 급격히 증가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많은 청소년들이 학업을 포기하고, 가장들도 생업을 포기하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현명하게 보내라는 격려(?)와 압력이 증인사회를 휩쓸었답니다...

아래는 왕국봉사 1974년 6월호 4면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형제들이 그들의 책임을 가볍게 마련함으로써, 이 낡은 제도에서 살게 되는 생활의 남은 부분을 파이오니아  봉사로서  마치고자 계획하고 있다는 보고를 종종 듣는다. 그것은 참으로 이 악한 세상의 끝이 이르기 전에 남아 있는 짧은 시간을 보내는  훌륭한 방법인 것이다." 요한1서 2:17. 

      건강이 나쁘다거나 가족적 책임 등의 환경은 당신이 야외 봉사를 하는 시간을 제한할지 모른다. 그러나 파이오니아 대열에는, 건강의 제한을 받는 사람들과, 가족을 가진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형제 자매들은 그들의 생활을 잘 조절하여 그들의 책임을 잘 돌보고도 야외 봉사에서 파이오니아들에게 요구된 일년에 1,200시간, 혹은 한달 평균 100시간을 바칠 수 있었다.    왕국봉사 1974년 6월호 4면. (한국어판)

 

 

아래의 영문판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그 점이 언급됩니다..  

 

   

      Reports are heard of brothers selling their homes and property and planning to finish out the rest of their days in this old system in the pioneer service. Certainly this is a fine way to spend the short time remaining before the wicked world’s end.—1 John 2:17

 

"형제들이 그들의 집과 자산을 팔고, 이 낡은 제도의 남은 날들을 파이오니아 봉사를 하면서 보내고자 계획하고 있다는 보고를 종종 듣는다. 그것은 참으로 이 악한 세상의 끝이 이르기 전에 남아 있는 짧은 시간을 보내는 훌륭한 방법인 것이다." 왕국봉사 1974년 5월호 3면(옮긴이 수정-류비). (영문판)

 

이처럼 그들은 학생이든 가장이든 모든 회중성원들이 전시간 봉사에 매진하도록 몰고 갔습니다...그리고 어느덧 세월은 흘러서 1975년 12월 31일도 지나고 드디어 1976년 1월1일...

여느 때처럼 아무일 없이 그렇게 조용히, 1975년이 지나갔답니다....

 

그 후 많은 이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지요....그 때 참 많은 증인들이 고생을 했답니다...경제적으로 이전 수준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세월이 흘러야 했습니다….님 주변에 오래된 증인들에게 물어 보세요....

 

그런데 기가 막히는 일이 나중에 발생했지요… 1975년이 허망하게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던 통치체가 드디어 1975년에 대해 입을 열었지요....통치체는 1976년 10월 15일호 파수대지를 통해  "확신을 위한 견고한 기초를 가짐" 이라는 기사를 내보내게 됩니다...아래는 파수대 1976년 10월 15일호 471면의 내용입니다.

 

15 그러나 우리가 특정한 날짜에 고착한 나머지 그리스도인이 보통 수행하는 일상적인 일, 즉 우리와 우리 가족이 참으로 필요로 하는 일을 등한히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 “날”이 와도 그리스도인들이 언제나 그들의 책임을 전부 이행해야 한다는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러한 생각을 갖지 않은 결과로 실망하였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잘못되었거나 그 말씀이 그를 속여 실망을 초래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그릇되게 이해하였음을 생각하고 자신의 견해를 조절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16 그러나, 만일 당신이 특정한 날짜를 크게 중요시하였고, 그렇지만, 칭찬할 만하게, 때의 긴급성과 사람들이 들어야 할 필요성에 주의를 집중하였다고 합시다. 그런데 지금은 일시적으로 약간 실망을 느낀다면, 그러면 당신은 참으로 패배자입니까? 참으로 손해를 보았읍니까? 이 양심적인 행로를 따름으로써 이득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또한 참으로 장성되고 이치적인 견해를 가질 수 있게 되었읍니다.—에베소 5:1-17. 

 

 

통치체는 1975년의 기대와 관련해서 위와 같은 정말 후안무치하기 짝이 없는 기사를 썼답니다. 조직은 왕국봉사 1974년 6월호 4면에서 실린 기사의 논조대로 "자산을 팔아서" 그리고  "심지어 가족 부양의 책임이 있는 형제들도 파이오니아를 할 수 있었다"고 격려(?)하고서는 그 이후 1975년이 지나자 이같이 사돈 남말하는 듯한 기사를 써서 전세계 증인들을 우롱했지요..

많은 증인들이 엄청나게 실망했답니다....이 말은 "때가 가까웠다고 여러분들이 우리 말을 믿고 파이오니아 하다가 집도 날리고 재산도 홀라당 까먹었는데, 우리가 언제 그렇게 극단적으로 살라고 말한 적이 있나, 이 양반들아....아무리 때가 가까워도 가족부양이나 지 할 일은 챙기고 했어야지! 철저히 반성하라구!" 이거나 또는  "내 말을 당신들이 잘못 알아 들었어, 그러니 생각을 바꾸고 반성해!" 라는 의미이지요.....이걸 적반하장이라고 하지요.....그리고 참 뻔뻔스럽다고 하지요..

 

이처럼 1975년 이후에 협회가 보여준 이러한 비겁하고 이중적인 태도, 아랫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태도는 1975년 예언 불발 그 자체보다 더 큰 실망을 신자들에게 안겨 주었지요...

 

위에 언급한1976년 10월 15일호 파수대 지의 "확신을 위한 견고한 기초를 가짐" 이라는 기사가 나간 이후 협회본부에 많은 항의가 쇄도하게 되었고, 실망한 많은 형제들이 조직을 떠났습니다... 그리하여 이후 여호와의 증인이 설립된 이래로 처음으로 전세계 전도인 수가 감소했지요... 

 

이렇게 되자 통치체는 다급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같은 후안무치+왕뻔뻔 기사(1976년 10월 15일자)에 대한 변명으로 파수대 1980년 7월호 "가장 가치있는 생활의 선택'이라는 기사가 실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기사가 지면으로 나오기 1년 전에 1979년 지역대회에서 동일한 내용을 먼저 연설로 발표하게 되었지요. (일반적으로 비중있는 내용들은 파수대 지면에 실리기 1년 전의 지역대회 연설에서 먼저 다루고 1년 후에 파수대 지면에 연구용 기사로 실리지요.) 이게 증인들 사이에서는 통치체가 사과했다는 전설(?)속의 그 연설이지요. 알고 보면 재탕, 삼탕인데...

 

그 중 일부만 살펴보지요. 아래는 그 파수대 1980년7월호37면5, 6항입니다. (밑줄 친 부분에 유의해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5 근대에 와서 이러한 열망은, 물론 그 열망 자체는 칭찬받을 만한 것이지만, 온 땅의 사람들이 처한 고통과 고난에서 누구나 바라는 해방의 연대를 정하려는 시도를 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자유 가운데서의 영원한 생명」이라는 책이 출판되고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가 인간 존재의 일곱째 천년기와 평행한다면 얼마나 적절할 것인가에 대한 해설이 이 책에 나오면서 1975년에 관한 상당한 기대가 부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가능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설명이 그 때에도 있었고 그 후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러한 신중한 설명과 함께 그 해에 희망이 실현되는 그러한 일이 단순한 가능성이라기보다는 개연성, 즉 더욱 확실한 것으로 말하는 다른 설명들이 지면을 통해 나왔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후자의 설명들이 위의 신중한 설명을 흐리게 만든 것이 분명하며 이미 싹튼 기대를 더욱 커지게 했던 것 같습니다.

6「파수대」 1976년 10월 15일 호에서는 특정한 연대에 고착하는 것이 현명치 못함을 지적하여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러한 생각을 갖지 않은 결과로 실망하였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잘못되었거나 그 말씀이 그를 속여 실망을 초래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그릇되게 이해하였음을 생각하고 자신의 견해를 조절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파수대」지가 지적한 “어떤 사람”이라는 말에는 여호와의 증인 가운데 실망한 모든 사람들이 포함되며 따라서 그 연대를 중심으로 희망을 세워 나가게 한 설명을 지면으로 나오게 일과 관련된 사람들도 포함됩니다.

 

이 말을 좀 쉽게 써보겠습니다...

 

"우리가 본의 아니게  신도 여러분에게 때에 대한 기대를 하게 했을 지도 몰라. 그리고 그 (후안무치+왕뻔뻔기사)기사에서 사실은 잘 읽어 보면 신도들만 탓한게 아니라 그거 쓰는데 함께 일한 사람들한테도 머라고 한 거니까 잘 읽어들 보셔.... 문맥에는 그런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었던 거니까 부디 오해하지 말아줘요~ 그러니까 (피해자들인) 당신들만 적반하장으로 탓했다고 너무 억울해 하지마셔~ 알았지?~ "  

 

라는 겁니다.......

 

문맥에서 "그러한 설명을 지명으로 나오게 한 일과 관련된 사람들"이라니요???

이게 도대체 누구를 가르키는 말이라는건지요???

책을 제본하는  형제들의 책임인지, 윤전기를 돌린 형제들의 책임인지 알다가도 모를 소리를 하고 있지요…아니면 통치체가 그렇게 시킨 적도 없는데 집필부 형제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그런 글을 썼다는 건지요? 어쨓든 읽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는 애매하기짝이 없는 표현을 사용했지요… 이처럼 말을  뱅뱅 돌려서....

 

결국 예언은 빗나갔는데, 도대체 누가 잘못한 건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건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소리를 한거죠... 한마디로 사과 같지도 않은 말을 내뱉은 거지요...

누가 보더라도 이건 솔직하게 사과한 게 아니죠...

 

예언 실패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도들에게 오히려 책임을 전가시킨 적반하장격의 기사(1976년10월 15일호 기사)에 대한 자질구레한 변명성 기사였지요... 

 

그래도 우리의 충성파 골수 증인들은 이런 (사과가 아닌) 변명에도 감동하셨지요....

얼마나 그 사과를 기대하셨으면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처럼 순수한 증인들에 대해 진정으로 연민의 감정을 느낍니다.

 

당시 증인들이 느끼는 반응에 대한 내용입니다...아래는 당시 상황이 묘사된 1980년 연감26면입니다. 1979년'산'소망 지역대회에 대해 언급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비중있는 내용은 1년전 지역대회 연설에서 먼저 다루고 1년 뒤에 파수대 연구용 기사에 실리지요. 즉, 아래에 언급한 이 연설은 1980년7월호 파수대 기사-주제:가장 가치있는 생활의선택-와 동일한 내용입니다.)

 

     "형제들은 또한 (1979년 ‘산 소망’ 지역 대회의)  이 연설(주제:가장 가치있는 생활의 선택)에서 상당수가 1975년에 대해 실망한 것에 대해 협회가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한 것에 대해서도 감사를 표하였다."

 

 

님...정말 1975년 사태에 대해 협회가  어느 정도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제발 우리 좀 솔직해 집시다....

이처럼 엄청난 사태를 초래하고도 통치체는 사과인지 변명일지 헷갈리는 말을 쥐꼬리만큼 언급했지요..

 

그래도 충성파 골수 증인들은 이 정도에도 감읍했지요...그들의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기제가 작동했는지도 모르지요... 사과했으니 이제 마음의 응어리가 풀렸다는 스스로의 위안과 함께요...

참 눈물나는 대목입니다....

이게 과연 감사할 만한 일입니까??? 화끈하게 사과해도 납득이 안갈 상황인데도요???

 

 

저는 그정도의 ‘쥐꼬리’ 변명에도 감사히 여기려는 우리 선배들의 마음과 심경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미 그들은 1975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는데...

그들에게 남은 것은 그들의 텅빈 마음...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얼마나 큰 상처가 남았겠습니까???

그나마 그정도 표현에서라도 위로를 얻고 싶었을 테지요...우리의 선배들은 자신들의 트라우마를 그렇게나마 치유하고자 했었을 겁니다...

참 안타깝고 서글픈 현실이었지요....  

 

님....시점을 좀 바꿔서 통치체 성원인 게리트 뢰시형제의 2009년 서울 국제 대회의 연설(소위 1975년 사과연설)에 대해 생각해 보지요...그는 이렇게 말했지요...

 

" ‘이 「파수대」지가 지적한 “어떤 사람”이라는 말에는 여호와의 증인 가운데 실망한 모든 사람들이 포함되며 따라서 그 연대를 중심으로 희망을 세워 나가게 한 설명을 지면으로 나오게 한 일과 관련된 사람들도 포함됩니다.’ 라고 통치체는 1980년 파수대 7월호 지면을 통해 사과했습니다.... 통치체는 잘못된 기대에 대해 이처럼 진실하고 솔직하게 사과했습니다.”

 

라고 말하더군요....

 

표현이나 사과의 정도도 그때(1979년 지역대회 연설과 1980년 파수대 7월호 기사)와 똑같았습니다...말씀드린대로 단지 위에 언급한 1979년 지역대회연설과 1980년 파수대 7월호 기사의 인용+재탕에 불과했답니다.... 이게 바로 충성파 골수 증인들은 "통치체가 또다시 지난 국제대회때 1975년에 대해 사과(?)했다" 고 감격해 마지않는 내용의 전부랍니다...

 

그런데 래쉬형제는 그 이후 이어지는 연설에서 빗나간 예언을 미화시키고 정당화시키는데 몇 배나 더 시간을 할애하더군요...이건 변명 정도가 아니라 어거지더군요... 예를 들어 레쉬형제는 1975년의 빗나간 예언에 대해  자명종이 30분 먼저 울린 것과 같다는 선포자책의 비유를 그대로 인용하면서요......

 

님..... 아무리봐도 그것은 사과가 아니라 구차하고 구질구질한 변명이었답니다...

 

게다가 매우 비겁하게도 이 문제와 관련 없는 타 종교를 끌어들이더군요... 그러면서 '우리 종교가 빗나간 예언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리스도교국 보다 낫다'는 취지로 말을 이어가더군요.... 

즉, 그리스도교국은 아예 때에 대한 인식도 조차 없고, 그러한 기대조차 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래도 우리는 계속 예의 주시하다가 잘못 짚은 거니까, 그들처럼 아예 무관심하게 있었던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논리였습니다....

 

이런식으로  1975년 연대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그리스도교국을 맹비난하면서

조직을 칭송하더군요....결국 그리스도교국을 희생제물로 삼으면서 물타기와 위기탈출을 시도하더군요....이걸 세상사람들은 "물귀신작전"이라고 말하지요.....

 

그분의 연설을 들으면서 아무리 말과 생각은 자유라지만 그래도 그분이 참 딱하고 불쌍해 보이더군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증인들이 낙원에 간다 해도 은근히 걱정되더군요...

왜냐하면 그곳에는 그리스도교국이 없다는 데 무슨 재미로 살까?....

외롭고 심심해서....여태껏 그리스도교국이 심심풀이 오징어+땅콩이었는데,

거기에는 이게 없으니... 무슨 재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님... 님의 상식적인 관점에서는 정말로 이게 감격어린, 진실한, 눈물 콧물 다 나오는, 감동이 쓰나미 물결치듯 밀려 오는 솔직한 사과라고 진정 여겨집니까?

이걸 솔직한 사과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제 관점을 바꿔서 사탄의 제도의 일부분이라는 상업제도인 기업(회사)과 연관 지어서 생각해 보지요... 그곳에서 말단 직원이 실수나 잘못을 했다고 가정해 보지요..이 경우 최고 경영자는 비록 자신이 직접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이에 대해 그 조직의 책임자로서 책임을 져야하지요...

필요한 경우에는 사과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책임자로서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도 하지요...

 

그런데 수백만 명의 증인들에게 특정한 연대를 바라보라고 하고서 학업이나 (심지어 가장들도)생업을 포기하고 파이오니아를 하도록 강권하고서는, 그래서 많은 피해를 보게 하고서도

우리의 위대하신 수령 통치체는 도대체 어떤 책임을 졌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1975년 종말론을 창시하시고는 마치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전가 시키는 기사를 쓰신  우리의 위대하신 수령 통치체분들....이렇게 위대하시고 잘나신 분들이, 우째 이 악한 세상의 일부인 기업체 오너만도 못한, 옹졸한 태도를 나타내신단 말입니까??? 

너무 위대하셔서 사과하기가 어려운가요???그런건가요??? 

 

 

일찌기 예수께서는 형제 하나를 실족케 하는 사람은 연자멧돌을 지고 바다에 빠지는게 났다고 하셨지요.(마태18: 6~10) 이처럼 동료신자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은 큰 죄에 해당합니다...그러면 도대체 누가 그 많은 형제들을 실족시켰나요?? 그 형제들이 스스로 연대계산을 고안해 내어 1975년이 획기적인 해라는 것을 알아냈다는 말인가요??? 아니면 통치체의 출판물과 대회를 통해, 즉 통치체를 통해 1975년 종말론을 알게 된 건가요?

무엇이 정직한 표현입니까???

 

협회는 현란한 말장난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철저히 외면하였지요....아니 더욱 나쁘게 자신들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따른 신도들을 탓하였지요..

 

또한 1975년 종말을 주장하는 것은 "그날과 그때는 오직 하느님만 아신다"는 성구들(마태24:36, 마가13:32, 사도행전1:7)과 어긋나기 때문에 아마겟돈을 특정연대로 못박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가 제명처분을 받은 사람들이 전세계에 많이 있었습니다. 물론 한국에도 이런 분들이 있답니다. 이 내용이 선포자 책에도 암시되어 있습니다. (선포자책 633면 참조.) 문제는 이들을 제명 처분한 이후, 협회의 예언이 빗나갔슴에도 이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조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아마도 통치체는 만약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신권조직이 진실한 사과를 하고 제명된 사람들을 회복시키는 조처를 취한다면, 그들의 위신이 크게 실추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도 그것은 지극히 옹졸한 태도이지요... 아마도 그들의 명예와 위신이 억울하게 제명당한 사람들의 명예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아니 그들의 명예나 위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런데 1975년과 관련해서 조직의 가장 실망스런 행동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실망해서 떠난 사람들을 조직이 뒤에서 비방하고 중상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떤 동기로 하느님을 섬기려 했는지 그 동기가 드러났다"는 둥, "이기적인 목적으로 하느님을 섬기려는 사람들을 걸러내고 체질하는 시기"라고 표현함으로 실망하여 떠나간 그들을 모욕했다는 것입니다. 아래의 내용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특히 고딕체와 밑줄 친 부분에 유의해서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체질하는 시기가 오다

1975년에 대하여 그리고 그 해가 여호와의 목적 성취에 있어서 의미하는 바에 대하여 강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 때를 옛 제도가 멸망되고 하느님의 신세계가 설립되는 때로 마음에 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한 기대가 실현되지 않자 일부는 하느님 섬기기를 중단하였다. (연감1995년 228면 멕시코편) 

 

케냐에서 정결하게 되다

1975년 이후 여러 해 동안 회중들은 정결하게 되었다. 악한 사물의 제도가 끝나는 때와 관련하여 1975년이란 연대만을 염두에 두고 진리에 머무른 사람들은 그 해에 끝이 오지 않자 떨어져 나갔다. 한 조사에 의하면, 이 기간에 새로운 전도인이 77명 있었고 49명이 무활동이 되었다...... 유감스럽게도, 몇 년 동안에 총 전도인의 3퍼센트 이상이 제명되어야 했다. (연감1992 년187면 케냐와 인근 나라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행하신다는 것을 믿은 것은 확실히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때에 관한 계산 그리고 그들이 때와 관련하여 가졌던 기대들 중 일부는 심각한 실망을 겪게 하였다.  1925년에 뒤이어 프랑스와 스위스의 일부 회중의 집회 참석자 수는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1975년에도 천년기 시작에 관한 기대가 실현되지 않자 또다시 실망하는 일이 있었다. 그 결과 일부 사람은 조직을 버리고 떠났다.... 이러한 시험들이 가려내는 결과를 가져와서 밀을 까부를 때의 겨처럼 날아가 버린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굳건하게 남아 있었다.(선포자책 제28장 633면 내부로부터 시험하고 가려내는 일)

 

일부 전도인은 영원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단지 1975년을 생각하고서 여호와를 섬긴 것이 분명하였다. 이 해에 관한 그들의 기대가 들어 맞지 않자, 그들은 여호와께 대한 사랑이 식어졌고 여호와의 조직을 떠났다. 1978년 8월에 전도인 수는 14,775명으로 감소되었는데, 1년 동안에 거의 2,000명이나 떨어져 나간 것이다. 3년 동안 감소는 계속되었다.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었지만,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연감1987년 109면 푸에르토리코 및 버진아일랜드)

 

꾸준한 발전이 계속되다

1970년대 내내 전도인 수가 꾸준히 증가하여 1974년에는 200명, 1975년에는 250명, 1976년에는 최고 276명에 달하였다. 대회와 기념식 참석 수는 400명이 넘었다. 이러한 약진이 있고 난 다음 지난 2년 동안에는 속도가 떨어져 새로운 사람들이 얼마 나오지 않았으며, 일부는 이 나라를 떠났고, 일부는 필요한 인내의 특성을 나타내지 못하였다.

(연감1981년 210면 ‘이스라엘’과 ‘요르단’)

 

어떤 사람들은 1975년에 그들이 기대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와 연합하던 일을 중지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그들의 관심이 식어지자 그들은 세상적인 관심사를 추구하는 일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77 봉사년도가 끝났을 때, ‘버어마’에서의 왕국 전도인의 수가 1‘퍼센트’ 감소한 것을 알게 되었다.(연감1980년 66면 ‘버어마’)

 

아마도 조직은 이렇게 함으로서 마음이 흔들리는 남아 있는 사람들을 붙잡아 두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참으로 잘못된 행동이지요...참으로 공정하지 못한 처사이지요...

통치체는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해 떨어져 나간 사람들을 그들의 마음이 그릇되어 그렇게 되었다고 하였지요...사실은 자신들의 거짓예언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데도요...

실망해서 떠나간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가슴에 대못질을 함으로 그들이 영원히 실족하도록 만들었지요...

 

이로 인해서 조직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더욱 마음의 상처를 받았지요. 앞서 언급한 대로 예수께서는 동료신자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만으로도 큰 죄가 된다고 하셨지요.(마태18:6~10) 그런데 더욱 나쁘게 그들은 낙심해서 떠난 사람들을 “동기가 순수하지 못해서” 또는 “가라지를 체질하듯이 걸러냈다”라고 함으로 실망한 사람들을 중상하고 모욕했지요..

 

님..예수께서는 이걸 머라고 하실까요??? 한번 실족시킨 것도 모자라서 그들의 동기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조직을 떠나 갔다고 말하는 그들...

 

마치 어떤 사람이 지나가는 행인의 다리를 걸어 쓰러지게 해놓고서는 도리어 "당신이 내 다리를 치고 가서 그런 것"이라고 우기는 사람의 모습....걸려 넘어져서 쓰러져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다친데 없냐고 말하기 보다는 "길을 걸을 때 딴청 피우니까 저렇게 된것"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

 

이렇게 실망해서 떠나간 사람들에게 진실한 사과는 고사하고 도리어 악담을 퍼부으며 자신들의 어거지를 정당화시켰답니다... 참으로 현란한 말장난이었답니다....

저는 이 사태를 조사하면서 혀로 죄를 범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알게 되었답니다.

(야고보3: 8~12)

 

형제들의 잘못이란 그저 통치체에서 시키는 대로 1975년을 간절히, 진실하게 기대한 것밖에 없었답니다...

 

그러면 과연 조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진리의 하느님께서, 거짓말하지 않는 하느님께서 거짓예언을 통해 사람들을 걸러내는 것이 과연 그분의 방법이란 말인지요??? 이게 하느님의 체질하는 방식이라는 겁니까??? 하느님이 그런 거짓예언으로 사람들을 실족시키시고 나중에는 그것이 나의 테스트 방식이었다고 말씀하시는 분이란 말인지요???

 

님...하느님께서 이 사태를 목격하셨다면 그 분은 극심한 모욕감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반면 진정 용기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남자다운 사람이라면 어떻게 처신했을 까요???대답은 자명합니다... 삼척동자도 다 압니다…

 

용기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잘못한 경우에 변명하지 않고 겸허히 진실하게 사과하고, 적절하게 문제를 바로 잡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망한 분들의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이 문제로 상처를 받은 분들을 감싸안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또한 책임져야할 사람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진실한 자세로 사과하고 문제들을 바로잡는 조처를 취할 때 그것이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누군가가 잘못했는데, 피해자에게 “당신이 말귀를 잘못 알아들어서 그렇다”는 둥, 뻔뻔스럽게 “자기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우긴다면, 님은 그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시겠습니까?  존경심이 생기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인격자라고 여길까요?

 

더 나아가 사과는 고사하고 적반하장으로 그 피해자더러 “당신의 욕심 때문에”, “동기가 불순해서” 그렇게 피해를 본 것이라고 악담하고 비방한다면 님은 그런 종류의 인간을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그런 부류의 사람을 상식적인 인간으로 여길 수 있겠습니까? 아마 이런 부류는 인간 사회에서도 하지하(下之下)의 저질 인간으로 취급당할 것입니다...

 

이번에는 관점을 바꿔서 세상 정부와 비교해 보지요...아시다시피 증인들이 사탄의 도구라고 욕해대는 세상 정부들도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 위원회(과거사 위원회 등)를 설치하고 조사를 하여 문제를 바로 잡습니다. 

그리고 적절한 사과와 보상을 합니다...

 

그러나 지상에서 유일무이한 하느님의 조직에서는 통절한 사과도 없고 아무런 조처도 없었습니다...또한 이 일로 인해 책임지는 통치체 성원도 전혀 없었습니다....만일 세상 조직에서 증인들처럼 그렇게 처신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 까요?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기는 커녕,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려고 하고, 말귀를 못 알아 들어서 그렇다고 하며 더 나아가 피해를 본 당사자들에게 너희들의 동기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리 되었다고 한다면요??? 아마 엄청난 반발이 있을 것이며 그 정부는 모든 사람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만약 협회처럼 처신한다면 그 정부는 분노한 민심으로 인해 전복될 지도 모릅니다. 사탄의 하수인인 세상 정부조직에서 조차도 협회처럼 처신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요...

 

님....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본다면 과연 통치체는 이 가련한 형제들의 어려움에 대해 진실하게 깊히 참회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빗나간 연대에 대해 통절히 사과를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통치체 성원중에서 어느 누구 한 사람, 책임진 사람이 있나요??? 아무도 없었습니다...

 

만약 어느 지방 장로가 "아무래도 아마겟돈이 내년에는 올 것 같다"고 회중에서 떠들고 다닌다면 그 지방 장로는 어찌될까요??? 더욱이 회중성원들의 상당수가 그 지방 장로의 말을 신뢰하다가 때가 오지않자 실망하여 떠나갔다면 그 지방장로는 어떻게 될까요???아마 해임+제명처분을 받을 것입니다...그런데 이에 비해 전세계적으로 1975년 종말을 연설로 외치고, 출판물로 도배를 한 우리의 위대하신 수령 통치체 장로들은 어떠합니까?....

이들 중 누구 하나 사임이나 해임된 사람이 있나요??? 아무도 없었답니다....

 

더욱 점입가경인 것은 이 1975년의 교리를 창시하시고 과감하게 밀어 부치신 프레드릭 프렌즈 형제가 노어형제의 뒤를 이어 제 4대 워치타워 협회장으로 등극+취임하시게 됩니다...승진... 엄청난 승진이지요...

 Maybe......아마 그래서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있는가 봅니다.. 

 

님...사실이 이와 같은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회(조직)는 유일무이한 하느님의 조직이니까, 도덕적으로 세상조직보다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일반 세상 정부에서조차 이런 일은 불가능하지요...왜냐하면 ‘이 악한 사탄의 하수인들’도 최소한 남들의 이목은 두려워할 줄 아니까요....

 

 “여자가 얼굴이 이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지요....

(이 말이 옳다는 의미가 절대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7~8년 전에 어떤 여자 강도가 지명 수배된 적이 있었지요...근데 이 여자가 얼굴이 좀 예뻤답니다...그래서 이 여자 강도한테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되었지요....

이때 얼짱 강도란 말이 생겨났지요...한번 검색해 보세요...얼짱 강도....

여자가 얼굴이 이쁘면 강도짓을 해도 용서가 된다???....

 

님...하느님의 유일무이한 신권조직이라는 타이틀만 붙으면(그 근거도 애매 모호하지만) 무조건 거짓예언을 해도 되고, 그 이후에 미안하다는 사과조차 하지 않아도 다 용서가 됩니까???더욱이 실망해서 나간 피해자들에게 "먼가 문제가 있어서" 또는 "동기가 악해서"라는 갖은 흉악한 딱지를 부치고 모욕한 그들.....이들이 "하느님이 조직"이라는 근거 없는 타이틀만 붙으면 이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단 말입니까???

 

마치 얼굴이 예쁘니까 강도 짓을 해도 용서가 되는 얼짱 강도처럼요???

 

 

님, 하느님도 그렇게 생각하실까요???하느님의 조직이라는 타이틀만 붙이면 무조건 하느님이 승인하시고, 거짓예언도, 그리고 그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을 오히려 중상해도 무조건 용서하실 거라고 믿으세요???

 

참고로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분의 회중에게 다음과 같은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무엇으로부터   떨어졌는 지를 기억하여라. 그리고  회개하고 이전의  행동을 하여라. 네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너에게  가겠으며,  네가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네 등잔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 " (계시록2:5)

 

예수의 참 제자들은 자신들이 잘못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행동이 예수의 참 제자임을 증명하는 태도(열매)라고 생각하시는지요?(마태7:16~21)

진실한 사과도 없는 태도..문제를 바로잡으려는 의지가 없는 태도...

 

과연 이런 자세를 예수께서 용납하실까요???

 

참고로 고대 이스라엘 당시에도 이스라엘 왕국이 잘못을 범했을 때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아서 그 왕국이 둘로 나뉘게 되었고, 나중에는 남북 왕국 모두 멸망당했답니다....

 

그리고 성전이 회복된 이후에도 유대인들이 예수를 배척하는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성전과 제사 제도가 멸망되고 말았지요...

 

이처럼 어느 특정한 조직이 설사 한번 하느님의 승인을 받더라도 그들의 잘못을 회개 하지 않고 문제를 바로 잡지 않으면 그 조직은 하느님의 심판을 받게 되지요....

 

개개인들이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 다는 구원 예정론을 우리 증인들은 비성서적인 것이라며 비웃지요...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 것이 결코 아니지요.....

마찬가자로 역시 설사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조직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사과하지 않는다면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성서에서는 알려주지요....

 

님... 양아치와 건달들(조폭)의 차이가 먼지 아세요? 양아치나 건달이나 모두 어둠의 사나이들이지요..하지만 건달들(조폭)은 비즈니스의 다각화로 다양한 사업분야에 진출하고 있지요...예를 들면 주차장, 모델하우스 분야, 부동산투자 및 관리 등 필연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넓은 인맥을 형성하게 되지요... 그러다 보니 이 사람들은 대인관계의 기본자세는 되어있습니다..아마 중립을 다녀온 형제들이라면 잘 아실 겁니다.. 그리고 이들이 그래도 의리는 있습니다... 자기 사람이 어려울 때 그냥 못 본척 놔두지 않습니다... 먼가 성의표시라도 합니다.더군 다나 자기 말대로 시키는 대로 했다가 손해 본 사람들에게는 더 잘해 줍니다. 결코 피해자들에게 험악하게 욕하거나 나쁜 놈이라고 하지 않습니다...그들을 어루만져주는 정도의 인성은 갖춘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건달들은 자기들의 잘못은 정중히 사과할 줄도 압니다...

 

님..그러나 양아치는 다릅니다..이들은 단독 혹은 3~4명이 팀을 이루어 절도, 삥뜯기, 사기, 강도 등의 행각으로 생업을 영위하지요....이들은 혼자 또는 비슷한 부류의 저질들끼리 일을 하다 보니 대인관계의 기본이 전혀 안되어 있습니다..물론 예외적인 사람도 있겠지만요... 자기들 끼리 속이는 것은 기본이고요, 보통은 피해자에게 협박과 모욕을 추가로 가하지요...

양아치 사전에는 미안과 사과가 없답니다... 참 파렴치한 자들...그 이름은 양아치랍니다... 그래서 건달들은 자기들을 조폭이라고 부르는 건 이해하지만 양아치라고 부르면 바로 칼부림이 납니다...이처럼 어둠의 세계에서도 상류와 하류들이 있다는 겁니다...중립을 지킨 분들은 아마 아실 듯...

 

그래서 저는 제 경험상 사과를 제대로 화끈하게 하는 사람은 좀 질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도 건달(조폭)로서의 대우는 해줍니다...하지만 꼴난 체면과 쫀심 때문에 사과도 못하는 찌질한 인간은 그냥 양아치로 취급한답니다.....

 

님... 최소한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조폭과 양아치를 구별할 줄 아는 정도의 안목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그래야 이 험난한 세상에서도 최소한의 주관을 가지고 살아 갈수 있으니까요....

 

 

내용이 좀 길어 졌네요...

 

그래서 아래에 복습질문을 준비해 보았답니다.

 

 

생각해 볼점.

 

1.    진실한 사과란 무엇이며, 어떤 조치들이 수반되어야 합니까?

2.    1975년 사태 이후 협회에서는 책임을 진 사람이 있었습니까?

   세상 기업체에서 이와 유사한 일이 발생하였다면 어떤 조치들이 취해질 것으로 기대할 수있습니까?  

3.    1975년에 실망해서 조직을 나간 사람들에 대해 통치체가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어떤 도덕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까? 세상 정부라면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설명하십시오.

4.    지방장로에게서 이와 유사한 문제가 생겼다면 그 사람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까? 반면, 통치체 장로들에게는 아무런 조처가 취해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5.    하느님의 조직이라는 타이틀이 붙기만 하면, 잘못한 경우라도 사과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용서가 됩니까? 당신의 생각을 말해 보십시오.

6.    양아치와 건달들(조폭)의 비유와 얼짱 강도의 비유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P.S 다른 건 다 잊어먹어도 이것만은 기억해 주세요...

 

“양아치와 건달들”

"얼짱 강도"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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