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현대종교>에서 1996년에 다룬 여호와의 증인의 1975년 종말론
여호와의 증인 바로 알기 5 이단관련자료
여호와의증인은 현대 시한부 종말론의 원조⑵
문9: 여호와의증인은 아마겟돈(큰 환란)의 순서들을 예언하였다는데, 그것에 관하여 설명 해 주시겠습니까?
답: 여호와의증인은 큰 환란의 시작과 과정을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첫 번째로, 어느날 갑자기 강대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국가들이 모든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결의하게 되어 일시적이나마 전세계가 완전한 평화와 안전한 상태로 되며 다시는 전쟁이 발 발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사건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이를 '평안하다, 안전하다'라고 하여 큰 환란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적용 성구로는 살전 5:3 등을 사용합니다.
두 번째로, 여호와의증인교를 제외한 전세계 모든 종교들이 각국 정부의 탄압으로 없어지 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종교 단체들마다 많은 재산들을 소유하고 있는데, 국가는 그것을 빼 앗기 위해 정책적으로 종교를 탄압하게 되고 결국 모든 종교 단체들이 멸망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큰 바벨론의 멸망'이라고 합니다(여호와의증인은 국가의 정책을 비 판하지 않는 등 온전히 정치적 중립을 지켜왔기 때문에 큰 바벨론의 멸망에서 제외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적용 성구는 계 17:1,2,5,16, 18:1~8,10 등을 사용합니다.
세 번째로, 다른 종교들은 다 없어지고 여호와의증인만 남게 되며 마지막으로 사탄의 조직 인 정부는 여호와의증인을 공격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때는 폭도들도 함께 일어나 여호와의 증인들을 죽이려 하기 때문에, 여호와의증인들 중 더러는 죽는 자들이 생긴다고 하였습니 다. 세상 정부가 하나님의 정부(왕국)와 곧 싸우게 되며 이때는 나라가 혼란하여 전세계적 으로 무정부 상태가 될 것이며 폭도가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이를 가리켜 '곡의 공격'이라고 불렀습니다. 적용 성구는 겔 38:14~16,18 등을 사용합니다.
네 번째로, 세상 정부와 사탄, 악귀들이 하나님의 왕국과의 싸움에서 패하여 국가는 완전 히 없어지고 사탄과 그의 악귀들은 무저갱에 감금되는데, 이 전쟁을 '아마겟돈 전쟁'이라고 합니다. 이 전쟁에서는 하나님의 정부가 여호와의증인을 보호하여 단 한 명의 신도도 다치 거나 죽지 않으며, 신도가 아닌 모든 사람들은 다 죽임을 당한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지구 는 낙원이 되며 여호와의증인들은 이 땅에서 영생을 누리게 된다고 합니다. 적용 성구는 계 16:14,16, 20:1~3, 21:1~6 등을 사용합니다. 여호와의증인들은 국가간에 평화회담이나 군비축소회담 등의 뉴스가 보도되면 으레 '평안 하다, 안전하다'가 성취되었다고 말했으며, 특히 그 한 예로써 1970년대 초반에 미·소간의 군비축소회담에 대하여 이미 성서 예언이 이루어져서 곧 아마겟돈이 임박하였다고 떠들어대 기도 했으나 모두 불발로 끝났을 뿐입니다. 그들이 예언한 큰 바벨론의 멸망과 관련하여, 정부가 종교를 탄압할 때 여호와의증인교는 그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증인교 단체도 어느 정도의 종교적 재산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만 보더라도 그들 의 종말론이 지극히 허황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문10: 1975년 10월 종말의 시기는 어떤 방법에 의하여 신도들에게 전달되었는지 구체적으 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답: 여호와의증인교가 발행한 어떠한 출판물에도 '1975년 10월에 세상 종말이 온다'는 내용 은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영원한 생명」이라는 책 29페이지 41항 등 에 '1975년 가을은 아담이 창조된 지 6천년이 차는 때이다'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같 은 책 pp.31~35와 「확인」책 pp.223~225 등에 그 연대 계산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의증인의 통치체는 '그 연대 계산법이 바로 세상 종말(아마겟돈)이 오는 시기를 계산한 것 이다'라는 소문을 신도들에게 퍼뜨림으로써 1975년 10월 종말을 가르쳤습니다. 다시 말해서 출판물에서는 1975년 종말을 - 1975년은 아담 창조 6천년이 되는 해라고 - 암시해 놓고, 문 자 기록이 아닌 말로써 1975년 10월 종말을 확정하여 가르쳤던 것입니다(통치체는 지극히 교묘한 방법을 사용하였으며, 현재 여호와의증인들은 인쇄 기록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1975년 종말을 발표한 사실이 없다고 발뺌하고 있습니다. 통치체가 1975년 종말이 불발될 경우에 대비하여 그러한 발뺌을 하기 위하여 출판물에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했을 것이라고 필자는 그렇게 추정하고 있습니다). 1969년 10월 13일부터 18일까지 일본 동경에서 개최된 국제대회의 프로그램에서, 여호와의 증인교단은 '1970년대 중반에 세계는 끝이 난다'는 단언을 한 사실도 있습니다(그러한 단언 은 1975년 종말을 겨냥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렇게 교묘한 방법에 의하여 1975년 10월 종말의 시기는 신도들에게 전달되었으며, 신도 들은 가까운 친지 등에게 1975년 종말을 호언장담하면서 아마겟돈이 임박하니 빨리 여호와 의증인 조직으로 들어와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였으며 일반 대중에게는 세상 끝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어드바이스> 통치체는 아담 창조의 시기를 기원전 4026년 초가을로 보고 아담 창조 6천년 이 되는 때를 '1975년 가을' 혹은 '1975년 초가을'(연대 계산표)이라고 출판물에 명시하였다. 일부 여호와의증인들은 그 때를 '1975년 9월'이라고 말했으며 또 다른 증인들은 '1975년 10 월 1일' 혹은 '1975년 10월 초' 등이라고 하였으나, 보편적으로 여호와의증인들은 1975년 10 월로 정하여 '1975년 10월에 아마겟돈(세상 종말)이 온다'고 예언하였던 것입니다.
문11: 1975년 종말의 예언을 빙자하여 여호와의증인의 통치체는 신도들에게 무엇을 강권하 였으며, 그로인해 신도들은 어떤 피해를 당했습니까?
답: 통치체는 신도들에게 아마겟돈이 임박하니 학업중단, 사업포기, 직장사직 등을 하고 종말의 소식을 전파하는 무보수 포교봉사에 매진하라고 공공연히 강권하였습니다. 1974년 가을이었습니다. 삼일당(진명여고 강당)에서 순회대회가 열렸는데, 매우 모범적(?) 인 한 가족이 나와서 경험담(간증)을 발표했습니다. 아버지는 직장을 그만두고 자녀들은 모 두 학업을 중단했으며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온 가족이 오직 무보수 포교봉사만 하면서 지극 히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간증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퇴직금은, 비록 이자는 적지만 가장 안전한 은행에 예치해 두었기 때문에 떼일 염려가 없어서 더욱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 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종말이 바로 눈앞에 임박했으니 다른 신도들도 모든 세속 일을 중단하고 오직 포교활동만을 하라고 강조했습니다. 참석했던 신도들은 일제히 힘찬 박수를 쳤고, 순회대회의 사회자는 '여러분들도 이 가족처럼 생활하시지 않겠습니까?'라고 신도들 을 부추겼습니다. 이 외에도 순회대회보다 규모가 더 큰 지역대회에서는 중학교나 고등학교 를 졸업한 청소년 신도들이 나와서는 종말의 때의 긴급성을 인식하여 진학을 포기하고 무보 수 전시간 포교봉사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경험담을 발표했습니다(순회대회 같은 대집회의 프로그램을 기획한 여호와의증인 조직이 공식적으로 학업중단, 직장사직, 사업포기 등의 경 험담을 발표하게 한 사실은, 통치체가 1975년 종말을 예언했음을 입증해 주는 것입니다). 직장사직, 사업포기 등을 유도하고 무보수 포교봉사에만 전념하도록 함으로써 1975년 10월 이후로 가산을 탕진하는 신도가 부지기수였으며 학업을 중단, 진학의 기회를 놓쳐 저학력의 수준에 머물게 된 청소년 신도들이 대단히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신도들이 큰 실망과 좌절 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문12: 1975년 10월 종말이 불발로 끝나자, 여호와의증인 교단측은 아마겟돈(종말)의 시기 를 연기하였다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답: 사실입니다. 1975년 11월 신도들은 '도데체 언제쯤 아마겟돈이 오느냐?'고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의증인의 교단측은 '1975년 12월말까지는 아마겟돈이 온다'고 적당히 얼버무 려 신도들의 불평을 일단 무마하였습니다. 1976년을 맞자 고위 간부인 순회감독자 등이 '이제 2~3개월 남았다'고 하면서 계속 종말의 시기를 연기하였습니다(1976년 봄까지 그런 식으로 신도들을 기만했다고, 필자는 그렇게 기 억합니다). 으레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종말 예언이 불발하면 연기하는 수법을 그대로 써먹었습니다. 여호와의증인의 조직은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하여 인쇄물을 사용하지 않고 역시 말로써 소 문을 조성하는 방법으로 종말의 시기를 연기하였습니다.
문13: 뻔뻔스럽게도 여호와의증인의 최고 기구인 미국 본부의 통치체는 각 나라의 가련한 신도 개개인에게 1975년 종말 소동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데 있어서 감쪽같이 성공을 거두 었다는데, 그것에 관하여 상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답: 1976년 11월 7일 일요일 왕국회관에서의 '파수대 잡지 연구' 집회에서, 전세계의 신도 들은 '때에 대해 균형 잡힌 견해를 가짐'이라는 제목의 파수대 기사를 1시간 동안 학습하였 습니다(파수대 연구 기사에는 통치체가 집필한 본문 내용과 그에 대한 각 질문이 있는데, 파수대 연구 집회에서 사회 감독자가 그 질문을 던지면 신도들은 그 본문 내용에서 답을 찾 아 발표하도록 마련되어 있습니다. 발표를 원하는 신도가 손을 들면 사회자가 발표를 허락 합니다). 신도들은 1975년 종말의 때에 대한 여호와의증인의 견해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짐 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주일 후, 1976년 11월 14일 일요일 파수대 연구 집회에서 '확신을 위한 견고한 기초'라는 제목의 기사(파수대 1976년 10월 15일호 pp.469~473)를 학습하였습니다. 그 기사 p.471 제15항에서 '만일 어떤 사람이 특정한 날짜에 끝이 올 것이라는 견해에 따라 생활을 영위하였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심히 부당하게 마련된 질문에 대하여, 신도 들은 본문의 내용에 따라 '…그 자신이 그릇되게 이해하였음을 생각하고 자신의 견해를 조 절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라고 자발적으로 대답하였습니다. 신도들은 각자 자신이 그릇되 게 이해하였기 때문에 1975년 10월이란 특정한 날짜에 끝이 올 것이라는 그릇된 견해를 갖 게 되었다고 공개적으로 시인하는 - 실제는 심히 부당하고 억울한 - 자아비판(?)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 기사 내용에 1975년 종말을 예언한 통치체의 잘못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았 으며, 신도들은 감히 통치체를 비난, 비판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통치체가 만든 각본(그 파수대 기사) 내용이 무조건 옳다고 맹종할 따름이었습니다(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 야 한다고 했듯이, 정작 가장 먼저 극심한 비난을 받아야 할 장본인들은 그들의 통치체였습 니다). 신도들은 통치체가 발행한 출판물의 내용에 대하여 무비판적으로 100퍼센트 받아들이는 원 격 조정 로봇(?)들이라는 사실을, 통치체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통치체는 그와 같은 내용 의 파수대 기사를 집필하여 신도들에게 학습시키면 신도들이 무조건 수긍할 것이라는 예상 을 하였으며, 그 예상은 통치체의 음흉한 의도대로 적중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통치체 가 예언한 1975년 종말 소동에 대한 모든 책임은 깊은 실망과 좌절에 빠진 가련한 신도들에 게 감쪽같이 몽땅 전가되었습니다. 이제 통치체는 1975년 종말 소동에 대하여 아무런 잘못 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으니, 통치체의 뒤집어씌우기 작전(?)은 대성공을 거둔 것이었 습니다. 이때부터 통치체는 1975년 10월 종말을 예언한 적이 없다고 발뺌하기 시작하였습니 다. 시한부 종말 소동의 책임을 피해 신도들에게 전가한 통치체야말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가장 뻔뻔스러운 시한부 종말론자입니다. 통치체는 가장 사악한 영적 사기꾼입니다.
<어드바이스> 여호와의증인 신도들이 통치체의 심각한 잘못을 모두 뒤집어 쓸 정도로 통치 체에 대해 무비판적인 맹종을 하는 이유에 관해서는, 추후 상세히 언급하겠습니다.
문14: 통치체가 1975년 10월 종말을 예언한 장본인이라는 명백한 증거는 무엇입니까?
답: 1971년 통치체는 17인 최고기구에 발탁되어 1980년까지 통치체 위원을 역임한 레이몬 드 프랜즈는 40여 년간 여호와의증인교에 몸 담았던 사람으로서, 1980년에 있었던 「타임」 지와의 인터뷰에서 '여호와의증인의 교단측(통치체)이 1975년 10월을 지구 종말의 때로 예 고하였다'고 폭로하였습니다. 그는(레이몬드 프랜즈) 자신을 포함한 통치체가 1975년 종말 의 발설 주범이라는 사실을 고백함으로써, 통치체는 1975년 종말을 예언한 적이 없다는 발 뺌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장본인이었던 그의 폭로가 그 무엇보다도 가장 명백 한 증거입니다(그가 그와 같이 폭로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통치체는 계속 발뺌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문15: 통치체가 1975년 10월 종말을 예언했다고 폭로한, 전(前) 통치체 위원 레이몬드 프 랜즈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답: 1975년 종말의 예언이 빗나가면서 여호와의증인의 시한부 종말론에 회의를 품게 된 그 는, 1980년 5월 21일 미국 뉴욕 브룩클린에 있는 교단 본부로 소환되어 통치체 동료들로부 터 '여호와께서 여호와의증인 조직체를 선택했다는 것을 의심했단 말인가?' 등의 심문을 받 은 끝에 압력을 받고 통치체 17인 위원회의 위원직을 사임하였습니다. 그는 수중에 교단측에서 지급한 1만 달러의 정착금과 6백 달러의 저축금밖에 없어 당장 먹 고 살 길이 막연해 슈퍼마켓을 경영하는 그의 신앙의 옛 친구인 피터 그레거슨을 찾아가서 잡역부로 취직하였습니다. 그레거슨은 잘데가 없는 프랜즈 부부에게 이동식 트레일러를 빌 려주었으며, 그도 역시 여호와의증인 교리에 의심을 품게 되어 1981년에 교단측으로부터 기 피인물로 낙인찍혔습니다. 당시 워치타워(파수대) 성서책자 협회장이었던 프래드릭 프랜즈 (4대 교주)의 조카인 레이몬드 프랜즈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솔직히 이처럼 100퍼센트의 맹종을 강요하는 단체가 또 있다고 상상할 수 없다. 그 들(통치체)은 겉보기에는 도덕적인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지만 실제로는 겸양과 열정과 자비 등의 기본 성품을 뒤바꿔 놓는다.' 레이몬드 프랜즈가 말한 바와 같이, 여호와의증인 조직 내에서 제명, 축출되지 않으려면 - 통치체가 1975년 종말을 예언한 적이 결코 없었다 -는 통치체의 새빨간 거짓말과 발뺌에 적 극 동조, 맹종해야 하며, 교단의 비리를 은폐하기 위해서라면 바른 말을 하는 자는 그 누구 라도 추방시킨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증인 집단은 진실과 바른말이 전 혀 통하지 않는 사교(邪敎) 동토왕국(凍土王國)입니다.
<어드바이스> 여호와의증인 교단측은 레이몬드 프랜즈에 대하여 단지 그가 성서의 원칙을 어겼기 때문에 추방당했다고 불분명하게 말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추방 사유를 밝히지 않고 있으며 그의 폭로 내용이 거짓말이라는 주장을 일체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통치체가 정당 하지 못한 사유로 그를 축출했으며 1975년 종말을 통치체가 예언했다는 그의 폭로 내용이 진실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필자는 1994년 5월 11일 오후 2시경 서울 신당동의 왕국 회관에서 여호와의증인의 모 감독자 2명 - 필자의 성명만 물어보고 자신들이 이름은 밝히지 않았는데 아마 떳떳치 못하기 때문에 그랬으리라 여겨집니다 -과 대화하였는데, 레이몬드 프랜즈가 추방 당한지 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명백한 추방 사유를 밝히지 못하 고 그 감독자들도 그와 같이 적당히 얼버무리면서 그가 배교했기 때문에 제명처분 했다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레이몬드 프랜즈는 바른 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호와의증인 조직으로부터 추방당했음이 틀림없습니다.
당시 <현대종교>에서 소개한 여호와의 증인
여호와의 증인 (그리스도교 교파)
천년왕국론을 믿는 한 종파.
19세기 미국에서 시작하여 세계 여러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1872년 찰스 테이즈 러셀이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 세운 '국제성서연구회'(International Bible Students Association)로 시작되었다.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름은 1931년 러셀의 후임자 조셉 프랭클린 러더퍼드(판사 러더퍼드:1869~1942) 재임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여호와(→ 야훼)를 참된 하느님으로 재확언하고, 이 이름을 증거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특별한 신임을 받는 추종자들임을 밝히려고 노력했다. 그는 신도들에게 휴대용 축음기를 나누어주어 개종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의 집 현관이나 거실에서 자신의 '짧은 설교들'을 들려주게 했다.
그의 지도 아래 러셀이 고안한 민주주의적인 조직은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협회 본부가 감독하는 신정(神政) 체제로 바뀌었다. 후임자인 네이선 호머 노어(1905~77)는 러더퍼드의 정책을 계승했는데, 그는 '워치 타워 길르앗 성서학교'(WatchTower Bible School of Gilead)(뉴욕 사우스랜싱 소재)를 세워 선교사와 지도자를 양성했고, 협회의 모든 책과 논문을 익명으로 발행해야 한다고 규정했으며, 여호와의 증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전도를 할 수 있도록 성인교육 과정을 두었다. 노어의 감독 아래 여호와의 증인들의 한 집단은 성서를 새로 번역했다.
프레더릭 W. 프랜츠가 1977년에 노어를 계승했으며, 1992년 12월 30일에 밀턴 G. 헨첼이 후임으로 선임되었다.여호와의 증인들은 다른 교단과는 거의 또는 전혀 교류하지 않으며, 모든 세속 정부로부터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그들은 세상의 권력과 정당들이 무의식 중에 사탄을 돕는 동맹자라고 간주한다. 이때문에 어떤 국가의 국기에 대해서든 경례를 하거나 병역 의무를 수행하기를 거부하고, 공공 선거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
이들은 다른 교단들까지도 사탄의 교묘한 수단일 것이라는 의심을 했으며, 여러 해 동안 자기들의 조직에서 목사·교회·회중 같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는 변했으나, 20세기의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해서는 여전히 폐쇄적이고 단절되어 있다. 그들의 목표는 신정국가인 하느님의 왕국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다. 이 왕국의 다스림은 아마겟돈 전쟁 다음에 등장할 것으로 믿으며, 이렇게 추정하는 근거로는 성서의 묵시서들, 특히 〈다니엘〉·〈요한의 묵시록〉을 든다. 그들은 이 책들이 세계사에 대한 하느님의 시간계획표이며, 인간의 운명에 대해 유일하게 권위를 지닌 통찰이라고 간주한다. 전도자 러셀은 묵시 문학적인 계산에 따라 1874년을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재림'의 해로, 1914년을 그리스도가 재림하고 '이방인 시대'를 마감하는 해로 잡았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러한 연대 계산과 예언에 힘입어 세계의 사건들과 그들이 시대의 표징들로 간주한 것에 근거하여 현대의 삶을 좀더 현실적으로 분석하게 되었다. 신학적인 면에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신정국가의 하느님의 대리인이며,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이 여호와 하느님과 화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자적인 지옥 개념과 영생의 불가피성을 모두 배척하며, 어떤 경우에는 죽음이 철저한 멸절을 뜻한다고 주장한다.여호와의 증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독일과 그 동맹국들에서 박해를 받았으며 연합국들은 그들의 활동을 금지했다. 식민지시대 이후에는 신권정치를 내용으로 하는 '파수대' 사상이 여러 아프리카 신생국들의 민족주의와 맞지 않았기 때문에 적대시되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왕국회관'이라고 부르는 교회당에서 집회를 가지고 침례를 베풀며, 개인에게 높은 수준의 도덕을 요구하며, 간음을 제외한 다른 모든 상황에서 이혼을 인정하지 않고, 성서적인 근거로 수혈을 거부한다. 또한 미국 법정들에 많은 소송을 제기해 승소함으로써 자기들의 신념에 따라 말하고 증거할 권리를 확보했다.지역 회중의 대부분은 왕국 선포자들로서, 이들에게는 1주일에 5시간을 왕국회관 집회에 참석하는 것과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많은 시간을 호별 방문 전도에 사용할 것이 기대된다. 개척 선포자들(파이오니아)은 시간제 세속 직업을 가지며, 1개월에 100시간을 종교 사역을 위해 일한다. 특별 개척자들은 실비 보상을 받는 봉사자들로서 1개월에 적어도 140시간을 종교 봉사에 사용해야 한다. 회중마다 정해진 구역이 있으며, 증인마다 전도할 이웃들이 정해져 있다. 이 종파는 호별방문, 재방문, 성서연구, 도서와 잡지 보급의 수를 기록하여 매월 보고한다. 출판 활동에는 책, 소책자, 녹음 테이프, 정기간행물 등이 포함되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월 2회 간행되는 〈파수대 The Watchtower〉와 유사 간행물인 〈깨어라! Awake!〉로, 이 두 간행물은 1990년대초에 112개 언어로 1,500만 부 이상 보급되었다.'여호와의 증인'의 활동을 이끄는 3개 단체 가운데 주된 단체는 1884년 러셀이 세운 '펜실베이니아 워치 타워 성서책자협회'(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이다. 다른 두 단체는 '뉴욕 워치 타워 성서책자협회'(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Inc., of New York)와 '국제성서연구회'이다. 99개의 지부 아래 229개 국가와 지역에 447만여 명(1992 현재)의 증인들이 있다. 한국에는 1912년에 여호와의 증인 선교사 R. R. 홀리스터에 의해 전파되기 시작, 현재 1,352개 회중에 7만 4,000여 명의 증인들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주의 만찬과 기념식을 매년 유대력으로 니산 월 14일 일몰 후에 거행하는데 1992년에는 한국에서 13만 1,859명이 모이기도 했다. 월 2회 발행하는 〈파수대〉와 〈지금은 깰 때이다〉의 한국어판은 매호 각 25만 부씩 발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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